게이트플라워즈의 탑밴드 출연에 대한 변명

2011년 6월 13일에 보컬 박근홍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현재 원 포스트는 삭제되었기에 내용을 복사해서 올립니다.

<게이트플라워즈이 탑밴드 출연에 대한 변명>

6월 11일 저녁에 탑밴드(톱밴드) 3회 예고편 보신 분들이 계시니 뭐라고 발뺌도 못 하겠네요.

예, 게이트플라워즈는 탑밴드 경연에 응모했습니다. 그리고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최종 24팀에 선발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자세한 방송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최소 한 달 정도는 TV에 나올 것 같습니다.

솔직히 기쁩니다. 1차 예선 때도 그랬지만, 2차 예선 때도 정말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합격한 것이니까요.
2차 예선 장소였던 장흥에서 일산-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그러나 저희로서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군요. 이제부터 왜 그런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참고로, 이 글은 게이트플라워즈를 대표해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게이트플라워즈의 한 구성원으로서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정말 시답잖은 불평불만으로 가득합니다. 사실 저나 멤버들이나 음악에 대한 생각 하나는 확고합니다. ‘정말 잘 만든 음악은 팔린다.’ 다음의 글은 그런 제 신념에 완전히 반하는 것입니다. 타이핑하면서도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그저 변명일 뿐이죠. 그래서 왠지 죄송스런 마음으로 얘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1.
사실 처음 탑밴드를 접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공지사항을 보니 대략 ‘숨어 있는 밴드를 찾는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더군요. 그래서 별다른 고민 없이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다섯 번째로 응모했던 것 같습니다. 굉장히 빨리한 편이었죠. 그런데 응모 마감이 다가오면서 다시 방송게시판과 공지를 살펴보니 학생 밴드, 혹은 직장인 밴드가 경연하는 양상으로 프로그램 포맷이 흘러가더군요. 여기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트위터에서도 몇 분께서 지적하신 바 있었죠. “한국대중음악상을 탄 게이트플라워즈 같은 밴드도 탑밴드에 출연하나요?”

예, 표면적으로 게이트플라워즈는
– 2009년 EBS 공감 10월의 헬로루키 및 문광부 선정 10월의 인디밴드
– 2010년 루비쌀롱 소속으로 EP <게이트플라워즈> 발매
– 2011년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록 노래, 올해의 신인 수상
같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밴드입니다.

제가 봐도 가슴이 다 설레네요. ‘내가 이런 대단한 밴드의 일원이었구나.’
‘게이트플라워즈 탑밴드에 초청된 것인가요’라는 고마운 트윗을 날려주신 분도 계시더군요.
그런데 실상은 어떨까요?

2.
– 게이트플라워즈는 2009년 10월의 헬로루키로 선발된 세 팀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해 열린 헬로루키 최종 결선에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달에 2, 3위로 선정된 팀은 모두 최종 결선에 진출했고, 심지어 10월 예선에 선발되지 못하고 다음 달에 선발된 팀조차 최종 결선에 진출했습니다. 아쉽게도 게이트플라워즈의 음악, 혹은 연주는 최종 결선에 진출하기에 부족했던 것이었겠지요.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EBS 공감 헬로루키는 지금껏 제가 본 중 가장 공정한 경연이었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그저 투정이 부리고 싶은 것입니다.

– 2010년 루비쌀롱의 도움으로 게이트플라워즈는 2010년 10월에 EP를 발매했습니다. 제작비가 부족하여 빌린 오디오인터페이스를 활용하여 밴드 연습실에서 녹음했습니다. 1,000장을 발매하여 지금까지 300여 장 정도를 팔았는데, 앞으로 더 팔릴 것 같지는 않군요. EBS 공감 출연료를 제작비에 모두 충당하여 얼마 전 간신히 손익분기를 0으로 만들었습니다. 돈 하나도 안 되는 게이트플라워즈의 앨범을 제작해 준 루비쌀롱에게는 한없이 고마운 마음뿐이지만, 그 외에 별다른 지원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루비쌀롱 대표 규영이 형도 정말 고민 많이 하셨을 겁니다, 게이트플라워즈를 팔아먹으려고.

– 한국 대중음악상 2개 부문 수상, 그리고 수상 소감에 대한 반응 덕분에 그날 하루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뿌듯합니다. ‘세상에, 우리가 그 쟁쟁한 후보들을 모두 물리치고 상을 받았다니!’ 그리고 2011년 현재. 게이트플라워즈는 올여름 국내 유수의 페스티벌 중 단 한 곳에도 나가지 못합니다. 2009년 헬로루키에 선정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구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게이트플라워즈의 노래들이 리스너들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으니까요. EP 발매 후 2011년 1~3월 3회의 단독공연을 감행했으나, 그 세 공연 평균 20명이 조금 안 되는 분들이 오셨을 뿐입니다. 그 중 태반은 멤버들의 지인이었죠. 뜬금없지만 그 공연에 와주신 분들께는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여하튼, 단독공연에 꼴랑 20명 모으는 밴드를 어떤 페스티벌에서 초청하려 하겠습니까. 당연한 것이죠.

3.
저희도 이런 저희가 밉습니다. 서두에 밝힌 저희의 신념에 따라 정말 좋은 음악을 만들어 진짜 음악으로 승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일단 EP는 녹음부터 시작해서 아쉬운 점 투성이었으니까요. 종일 고심하면서 곡 작업하고, 끊임없이 합주하면서 퍼포먼스를 향상시키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 회사 회식이 있으면 그날 저녁 공연은 포기해야 합니다. 기타리스트는 조만간 사교육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드러머는 일러스트 작업 때문에 연습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고, 베이시스트는 학교 졸업하면 뭘 해야 할지조차 막막합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대한민국 밴드 대부분이 마찬가지일 겁니다. 밴드로, 그것도 자작곡을 연주하는 밴드가 돈을 번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물론 예외가 있죠. 정말 엄청난 노력으로 좋은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게 마침 운 좋게도 듣는 분들마저 좋아해 주셔서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팀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단, 그 팀이 게이트플라워즈는 결코 아닙니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경력이 있음에도요.

4.
이런 상황에서 ‘탑밴드’라는 기회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상금 1억도 정말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공중파, 그것도 토요일 밤에 TV에 나올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죠.

다시 고민이 시작됩니다.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탑밴드는 슈퍼스타K와 위대한 탄생의 다른 얼굴이죠. 평소 ‘진정성’이라는 잣대로 수많은 밴드를 폄하해온 제가 그 진정성과 거리가 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는 자체가 자기모순입니다. 소위 ‘사회에 대한 고뇌를 담았다는’ 그 가사와 노래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른다는 자체가 얼마나 웃긴 일이 될지는 막연하게나 예상되는 바입니다.

헬로루키 선발 때부터 게이트플라워즈의 모든 것을 챙겨주시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게이트플라워즈의 수많은 단점을 무릅쓰고 ‘진정성’ 하나만 보고 앨범 제작에서부터 공연까지 모든 것을 도와주시고 계시죠. 게이트플라워즈이 친아버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아버지 정도는 되시는 분입니다. 바로 그분이 게이트플라워즈가 탑밴드에 나간다고 하니 한마디 하시더군요.

“너네 거기 나가면 나 볼 생각하지 마라.”

5.
그럼에도 저는 게이트플라워즈와 함께 탑밴드에 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최소한의 선은 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당장 제가 판단하기에는 탑밴드에 나가는 게 게이트플라워즈의 음악을 바꾸지 않고 게이트플라워즈를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평소 어떤 밴드는 수준이 높네, 어떤 밴드는 쓰레기네 하는 대화를 자주 하긴 하지만, 수준이 높던 낮던 모두 대중음악의 카테고리하에 있는 한 사람들이 듣지 않는 음악은 의미가 없습니다. 저희가 음악을 바꾸지 않고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당장은 이 게 유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 저는 게이트플라워즈를 더 많은 분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대중음악을 하고 있으니까요. 들으신 다음에 싫어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들려드릴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싶진 않습니다.

예고편에 나온 게이트플라워즈를 보고 우려를 하시는 분들도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우려마저도 결국 게이트플라워즈가 TV에 나오고 나서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탑밴드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와중에, 밴드를 하는 형님께서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이름만 대면 아실 밴드라 밝히기가 꺼려지는데, 여하튼 국내 밴드 중 제가 아는 한 그 형님, 그리고 그 밴드보다 ‘진정성’에 집착하는 밴드는 없었던, 그런 밴드입니다.

‘야, 좋은 기회네. 우리 때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했을 텐데. 나도 예전에는 그런 거 안 하려고 노력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어.’

사실 자조적인 느낌이 더 강했지만, 그 형님이 탑밴드 출전을 찬성하니 뭔가 면죄부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아, 면벌부였나?

6.
여하튼 게이트플라워즈는 탈락하기 전까지는 탑밴드에 계속 출연할 예정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한데, 저 개인적으로는 심사위원분들로부터 ‘비호감’이라는 소리마저 들었습니다. 심지어 ‘좋은 부분이 단 하나도 없다’라는 평마저.

저는 그 ‘비호감’, 그리고 ‘단 하나도 없는 좋은 부분’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서 정말 기쁩니다.

탑밴드를 시청해주실 모든 분께, 꼭 저희가 아니더라도 보고 마음에 드시는 팀, 그리고 노래가 있다면 꼭 들어주시고 지지해주실 부탁드립니다. 음악이 아닌 글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정말 쪽팔리긴 하지만.

7.
이 긴 뻘글을 지금까지 읽어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언제 술이나 한 잔 하죠.

p.s.
자격에 대한 지적이 있어 한 마디 더 하려 합니다. 생각해보니 그게 가장 중요한 내용일 수 있었는데 깜빡했네요.
디씨 인디갤에 ‘게이트플라워즈’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이 보이기는 처음인듯.

소속사 여부 관련하여,
기본적으로 저희는 루비쌀롱과 전속 계약을 맺은 상태는 아닙니다. 즉, 루비쌀롱에 소속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유통과 홍보를 맡아주신 것이고요. 그리고, 그 얘기는 1집이 루비쌀롱에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죠. 규영이 형이 그럴 마음이 없다면.

앨범 관련으로는,
일단 저희가 낸 것이 풀렝스 앨범이 아닌 EP이므로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다음 주 방송에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스포일러 안 떄린다고 해놓고…..), 그 부분에 대해 심사위원분들과 방송국에서도 많이 숙고한듯 싶습니다. 그 결과 2차 예선에 나오게 된 것인데요,

만약 지금이라도 어떤 문제가 있다면 즉각 사퇴할 것입니다.

p.s. 2
멤버들끼리 사소한 문제로 다투고나서 ‘이 망할 밴드 확 해체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여러 분의 댓글을 보면 정말 열심히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안 들어준다고 푸념하지만, 게이트플라워즈도 어느새 그런 밴드가 되었네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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